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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공무원, 행복한공직자로 살아온 수원시체육회 이광수총무과장(월간잡지 대한국인4월호 인터뷰)
No. 27 작성자 : 박성호 작성일 : 12.03.30 조회수 4478

천상 공무원, 행복한 공직자로 살아온

수원시체육회 이광수 총무과장

 

이광수 수원시체육회 총무과장은 스스로 “일복 많은 사람”이라 말한다.

지난해 6월 30일자로 수원시 공무원으로 명예퇴직한 이 과장은 지방시설서기관을 최종 직급으로 30년의 공무원 생활을 영예롭게 마감했다. 허나 퇴직 직후, 그를 부르는 데는 한두 곳이 아니었다. 욕심보다는 또 다른 사회에서 더 봉사하겠다는 각오로 지난해 7월 퇴직하자마자 수원시체육회 선수촌장으로 인생 제2막을 출발한 이 과장은 그간 쌓워온 행정의 노하우를 조직에 접목시키는 견인차 역할뿐만 아니라 화기애애한 직장분위기 조성에도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학창시절과 공무원 생활 대부분을 보낸 그는 이제 새로운 동료와 주민들과 함께 뜻을 모아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또 다른 추진동력체 역할이 하고 있는 셈이다.

 

편안하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라

1981년 지방지적기원보를 필두로 이광수 과장의 무탈한 공무원 생활은 시작됐다. 사람 좋아하는 성격이 직무와 잘 맞아서, 그리고 운이 따라서 행복한 공직자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고 이 과장은 겸손을 표하지만 실은, 두 번의 도지사 표창 외에 지방세정발전 유공으로 장관표창을 수상했을 정도로 뛰어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우수 실적이 이광수 과장의 진가를 전부 말해주지는 못한다. 지난해 7월 열렸던 이 과장의 명예퇴임식 때, 수원시장은 주민들이 전달한 편지를 낭독했다. 수원시 매탄2동의 동장직을 겸하던 터였는데 이 과장의 퇴임을 아쉬워하고 축하하는 주민들의 마음을 모아 손수 써내려간 편지였다. 평소 눈물이 많고 정에 약해 TV를 보다가 울기도 잘 한다는 이 과장의 마음도 순간 뭉클해졌다.

“주민들의 소박한 마음이 전해져 그 순간 슬쩍 눈물이 나더군요. 제가 특별히 잘 한 것은 없어요. 주민들과 잘 지내려면 일단 격의가 없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술도 한 잔씩 기울이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죠. 그래야 그 분들 마음을 알고 민원이 생겨도 잘 해결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냥 저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적이 없는 호인”, 주변에서는 그를 ‘천상 공무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흔히 공무원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깐깐하고 사무적인 태도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늘 이 과장은 자기 식대로 묵묵히 일을 해결해 왔고,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인간미는 동료들에게도 주민들에게도 민원인들에게도 모두에게 다 통했다.

 

불가능한 민원을 대하는 방법

딱 보면 불가능한 민원이 있다. 그럴 때 이광수 과장은 딱 잘라 “안 된다”고 말하기보다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그가 후배 공무원들에게 조언하는 바대로 ‘시늉’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속임수가 아닌 소통 방식. 언젠가 조직 내 회의석상에 민원인에게 5분 발언 기회를 마련한 적도 있었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당사자는 설사 해결이 나지 않더라도 수긍하고 고마워한다. 그 누가 청을 하든 불만을 제기하든 그로부터 “고맙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는 내 일처럼 신경 쓰는 것. 오랜 동안 이 과장이 행해온 방식은 원리 원칙을 비껴가지 않으면서 원리 원칙을 뛰어넘는, 융통성과 혜안을 지닌 탁월한 소통법이었다.

“처음 공무원이 되면요. 누구나 법대로 합니다. 법만 따져요. 그러면 상대가 불편해하고 민원은 늘지요. 다 사람 일이거든요. 사람들의 심리를 알고 ‘어떻게 하면 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민원인이 네 아버지라고 생각해라. 바로 내칠 수 있겠냐….’”

법을 응용해서 법 위의 것을 가르쳐주는 게 공무원이라 말하는 그는 인사계에서 문제를 토로하는, 조직에 썩 적응하지 못하는 부하들도 여러 번 데려와 한 팀을 꾸렸었다. 그들을 편하게 인격적으로 대해주어서인지 다른 부서에서 말썽을 일으키던 사람도 이 과장과는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술을 좋아하는 이 과장은 직원들과 술자리도 많이 갖는 편이었지만 미리 공지를 띄우고 약속을 잡는 스타일은 아니다. 한번 맘먹으면 사람 가리지 않고 말단직원까지 다 데리고 가지만 보통은 퇴근 때 마주친 이에게 자연스레 술자리를 권한다. 권위적인 뉘앙스가 아니므로 “오늘은 약속 있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오면 이 과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럼, 오늘은 내가 산 거다. 다음에 네가 사”라고 응수한다. 따를 수밖에 없는 상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수원의 홍반장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

“나고 자란 곳에서 생활하는 게 큰 행복이다”라고 말하는 이 과장은 실제로 용인에서 났고 중학교 입학 이후에는 줄곧 수원에서 자랐다. 공직자 생활 첫해에 김포에서 5년 근무한 이후 수원으로 발령이 나 지금껏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긴 영화 제목과 같이 수원시내 곳곳에 그의 정감 있는 ‘오지랖(?)’의 흔적이 남아 있다.

30여년의 공무원 생활 동안 보람도 많았다. 100명의 공동소유 땅을 1년 이상에 걸쳐 분할해 개인에게 돌려주었을 때, 한 명 한 명 입맛에 맞춰 조율하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결과를 보고 주민들이 흡족해하는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과 보람을 안겨 줬다. 매사에 공들여 올바르게 생활해온 덕에 동료들로부터는 “한 번은 꼭 같이 일해보고 싶은 사람”으로 통했고 분에 넘치는 칭찬을 들으며 살아 왔다.

 선한 뜻이 깃든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인지 현재까지도 여럿 좋은 인연들의끈이 함께하고 있다. 1996~1998년까지 국제평화교육자연합(IAEWP-UN.NGO) 세계평화대사직을 헌신적으로 성실히 수행한 것을 인연으로 지금도 세계봉사자 선교연맹의 명예총재로서 활동한다. 세계봉사자 선교연맹이 조원명 총재는 이 단체가 지금껏 존속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광수 명예총재의 특별한 배려 덕분이고 그로 인해 세.연이 국제적인 봉사단체로 도약했다고 거듭 감사를 표한다.

“악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재수 좋은 사람 같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30년이란 세월이 삽시간에 훌쩍 지나버린 것 같아요. 이제는 아내가 타박하는 말처럼 남 좋은 일 그만 하고, 아내와 시골에서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아직은 때가 아닌가 봅니다.(웃음)”

이 과장은 수원시체육회에 몸담은 이래, 프로야구 제 10구단의 수원 유치를 위해 주민들과 함께 바쁘게 뛰고 있다. 시민들의 열의가 대단해 자발적으로 유치단을 꾸리고 서명을 받으러 다닐 정도라고. 인구 110만이 넘어선 수원이 만약 제 10구단을 유치하면 1만 명의 일자리가 생기고 1천억 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한단다. 그의 말처럼, 주변의 바람처럼 아직은 이 과장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것 같다. 그가 나고 자란, 그가 사랑하는 수원에. 그가 오며 가며 안부를 묻고 술 한 잔 기울이는 수많은 지인들이 살아가는 이 터전에 말이다.

“1년에 한 번은 수첩정리를 하잖습니까. 옮겨 적을 사람이 있고 빼버리는 사람이 있죠. 전화 한 통이라도 걸어온 사람은 섣불리 명단에서 지울 수 없겠죠. 이름을 올리기는 쉬워도 지워지지 않기는 힘든 법입니다. 수첩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 돼라고 말하고 싶네요. 결국, 남는 건 사람 아니겠습니까….”